권한 없는 책임을 질 때, 당신의 희생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함’을 증명하라

나는 한때 권한 없이 책임만 주어지는 상황을 ‘리더십의 시험대’라고 착각했다. 결정권은 상사에게 있고, 수습은 나의 몫인 불균형한 구조 속에서도 나는 묵묵히 버텼다. 부족한 권한을 나의 노동력과 감정 소모로 메우는 것이 조직에 대한 충성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희생할수록 조직은 건강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메운 구멍만큼 시스템의 결함은 가려졌고,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기형적 구조는 고착화되었다. 나는 헌신적인 리더 후보가 아니라, 고장 난 시스템을 억지로 가동하는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다.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가 만드는 비극

조직학에서 권한(Authority)과 책임(Responsibility)의 일치는 기본 상식이다.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책임만 지는 것은, 운전대는 남이 잡고 있는데 사고가 나면 보험료는 내가 내는 것과 같다. 이 구조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운이 좋길 바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우리가 이 불합리함을 개인의 역량으로 돌파하려 할 때 발생한다. 권한이 없어 설득되지 않는 유관 부서를 감정으로 호소하고, 결정권이 없어 지연되는 일정을 밤샘 작업으로 해결하려 든다. 개인의 희생으로 시스템의 설계 오류를 보완하는 행위는 결국 조직 전체의 ‘인지 마비’를 불러온다.

영혼이 아닌 결함을 노출시켜라

우리는 책임감이라는 단어에 속아 내 영혼을 갈아 넣는 일을 멈춰야 한다. 권한이 없어 발생하는 지연과 오류는 나의 무능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함이다. 이를 억지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그 결함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수치와 데이터로 노출시켜야 한다.

이것은 무책임이 아니라 상향 관리의 본질과 닿아 있다. 권한이 부족해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음을 상부에 보고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만큼의 권한을 요구하거나 반대로 권한만큼의 책임으로 하향 조정하는 협상이 필요하다. 기준 없는 인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터질 시점만 늦추는 유예일 뿐이다.

통제권 회수를 위한 선언

권한 없는 책임의 굴레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의 한계’를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을 그어야 한다. 그것이 구조적 정렬을 회복하는 시작점이다.

지금 당신이 짓누르는 것이 정말 당신의 부족함인가, 아니면 권한이라는 도구 없이 책임이라는 짐만 들고 있는 설계의 오류인가. 시스템의 고장을 당신의 몸으로 때우지 마라. 기계는 고쳐 쓸 수 있지만, 타버린 당신의 영혼은 복구되지 않는다.

이 글을 관통하는 기준

– 권한 없는 책임은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시스템의 설계 오류다.
– 개인의 희생으로 고장 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조직을 더 무능하게 만드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