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시간 ‘존버(무작정 버티기)’가 직장인의 가장 큰 미덕이라 믿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언젠가 보상이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퇴사 충동이 들 때마다 “이번 한 번만 더 넘겨보자”며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고민이 1년을 넘기고 2년이 되어갈 즈음, 나는 내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탈출하려는 의지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연히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다가 내 상태를 설명하는 정확한 단어를 발견했다. 나는 인내심이 강한 게 아니었다. 그저 ‘무기력’을 학습하고 있었을 뿐이다.
인내가 아니라 ‘학습된 무기력’이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나중에는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와도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고통을 수용해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내 지난 2년이 딱 그랬다. “이직 준비를 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채용 공고를 검색할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부당한 업무와 야근을 견디는 것을 ‘성실함’이라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환경을 바꿀 수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 현실에 굴복한 상태였다. 버티는 힘이 생긴 게 아니라, 벗어날 힘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익숙한 고통을 선택하는 뇌의 함정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변화보다 유지를 선호한다. 이를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한다.
미지의 이직 시장에 나가서 겪을 두려움보다, 싫지만 익숙한 현재 직장에서 겪는 고통이 심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도 여기는 업무 프로세스는 아니까”, “사람은 익숙하니까”.
내가 ‘신중함’이라고 불렀던 수많은 이유는 사실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핑계였다. 나는 더 나은 곳으로 갈 타이밍을 재고 있던 게 아니라, 변화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 ‘보류 상태’라는 벙커 속에 숨어 있었다. 목적 없는 유지가 길어질수록, 나의 업무 감각은 무뎌졌고 시장 경쟁력은 조용히 썩어가고 있었다.
‘전략적 버티기’에는 마감 기한이 있다
물론 모든 퇴사가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전략적으로 버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능동적 인내’와 ‘수동적 방치’를 구분하는 기준을 세웠다.
진짜 인내는 명확한 목표(D-day)와 획득하려는 역량이 있다. “딱 6개월 동안 프로젝트 리딩 경험만 쌓고 나간다”는 식이다. 반면, 기약 없이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고통을 견드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방치하는 학대다.
결정을 보류하는 것도 결정이다. 다만, 그것이 전략인지 회피인지는 스스로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기회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변화가 두려워 익숙한 고통을 선택한 것인가?”
기한 없는 인내는 미덕이 아니라, 게으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목적과 기한이 없는 버티기는 인내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구조적 방치다.